2011년 2월 7일 월요일

바보만행의 행복론

난 정말 행복한가?

"행복"이란 무어라고 정의하여야 할까?

15~6년 전 직장 후배가 직장을 옮겨 서울로 갔다.
그 때 난 부산의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마침 그 후배가 부산에 인사 차 와서 집사람과 저녁을 하였다.
그 때
후배 :  "형수님, 행복하세요?" 
집사람 : (,표 없이 바로) "네, 행복해요"

사실 그렇게 행복할 만한 여건은 아니었다.
훨씬 돈도 적었고, 서울의 강남에서 살고 있는 지금이 사회적 지위(?)가 높지않았을까?
그런데 지금 똑같은 질문을 집사람에게 해 보니 대답을 망설인다.
그리고 조건부 행복을 시사한다.

얼마 전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었다.
월세도 아닌 년세 50만원으로 "자발적 가난"을 택한 그들이 행복학교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주인공들을 나의 잣대로 보면 불행 중 상급 불행한 사람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
몇 년전에 방글라데시라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왜 그들은 행복할까?

바보만행의 생각은 이렇다.

기준이 다양하여야 하고 극단적 비교를 하지 않아야 한다.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다. 행복한가를 느끼는 것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의 비교 기준이 무엇이냐가 내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를 가름한다고 생각한다.

돈이 있어 행복한가?
나에게 100억만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행복하겠다.
평생 놀면서 걱정없이 살 것 같다.
그러나 지리산에 계신 분들은 월 10만원에도 행복한 분이다.
막걸리를 마실 돈만 있어도 행복하단다.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 행복하단다.

어제 1박 2일이라는 TV 방송에서 설악산을 올라가면서 힘이 든 모습이 보였다. 그래도 그들은 고통을 감수하면서 쉬지않고 대청봉을 향해 올라간다. 아마 정상에 올라가면 뿌듯한 자기도취에 행복해 할 것이다. 육체적 고통이 불행하다고 하면서 계속 미련하게 더욱 더 몸을 학대(?)한다.
다음에 올 행복을 위해서 일 것이다.

가난이 불행이지만 친구가 없는 사람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이처럼 행복하다는 만족을 채워 주는 요인이 다양하여야 하고,
이를 기준으로 비교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잠재적 실업자에서 확실한 백수가 되었다.
미래를 생각하니 잠이 안오기도 하고, 생각이 많다.
무한도전의 뚝이 유재석이나 미존 정형돈이 나를 통쾌하게 웃게 하지 못했다. 아니 내가 느끼는 감정에 불행의 한 가닥이 나를 화끈하게 웃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동안 쉬지않고 일한 만큼 재충전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바로 굶어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영화도 보았다. 아주 편하게 보았다. (상하이라는 영화)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 또 지금처럼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
또 지금같은 일과 방법으로 벌어야 한다는 대안없는 생각 등이 나를 불안하게 하였고
이는 불행하게 하였다.

그러나 생각의 시각을 바꾸고 각도를 바꾸고 가족들로부터
위안을 받고 지인들의 고통 분담을 생각해주는 자비와 사랑을 공감하기 시작하자, 불안보다는 휴식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이 기회가 고맙고 행복하다.

내가 생각하는 생각의 기준을 다양하게 하였고 비교를 긍정적이고 생산적이고, 밝고 모두와 어깨에 놓인 짐을 공유하며
내가 감당할 만큼으로 작게 했을 때 행복이 나에게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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